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루돌프 프란츠 카를 요제프 (문단 편집) == 여담 == * [[독일 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빌헬름 2세]]와 비교가 많이 되는데 일단 둘 다 같은 세대로 나이가 비슷하고, 어머니와 할머니가 사이가 안 좋았고 어렸을 때 학대를 당했으며 할머니의 품에서 자랐다. 차이점이 있다면 루돌프 황태자는 할머니 [[조피 프레데리케 폰 바이에른|조피 대공비]]한테 (후계자 교육이라는 명목하에) 학대당했고 어머니 [[엘리자베트 폰 비텔스바흐|엘리자베트]]는 아들에게 거의 무관심했다. 빌헬름은 반대로 어머니 [[빅토리아 애들레이드 메리 루이자|프린세스 로열 빅토리아]]한테 (왼쪽 팔을 치료한다는 명목 하에) 학대당했으며 이를 보다 못한 할머니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의 아우구스타|아우구스타]]가 손자를 데려와서 직접 키웠다. 재밌게도 루돌프 황태자와 빌헬름 모두 아버지와 정치 성향이 정반대여서 갈등이 잦았다. 차이점이 있다면 [[프란츠 요제프 1세]]-루돌프 황태자 부자는 각각 보수주의자와 자유주의자였던 반면, [[프리드리히 3세(독일 제국)|프리드리히 3세]]-빌헬름 2세 부자는 정반대로 자유주의자와 보수주의자였다. 참고로 부자 간의 수명도 정 반대인데 프란츠 요제프 1세는 80세가 넘도록 장수했고 루돌프 황태자는 자살로 단명한 반면 프리드리히 3세는 57세의 나이로 '''비교적'''[* 아버지랑 아들이 워낙 오래 살아서 그렇지 프리드리히 3세는 손주도 봤다.] 이른 나이에 사망한 반면 빌헬름 2세는 82세까지 살아서 증손까지 볼 정도로 장수했다. [[파일:루돌프 황태자 부부와 빌헬름 2세 부부.jpg|height=500]] 루돌프 황태자 부부와 빌헬름 2세 부부. ~~루돌프 입장에서는 꼴도 보기 싫은 사람이 2명이나 있으니 힘들 듯 하다.~~ 또한 루돌프 황태자는 정략결혼한 [[벨기에의 스테파니|스테파니]]와 사이가 나빴고 베체라를 만난 후 혼인무효를 하려 했지만 허락받지 못하고 욕만 퍼먹고는 결국 마리와 동반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만난 지 몇 달도 안 된 마리와 재혼은 신분상으로도 불가능 그 자체였기에 그냥 사망 전 스테파니와의 관계를 확실히 끝내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다. 슬하에 외동딸만 있어서 루돌프 황태자의 직계는 단절되었다. 반면 빌헬름 2세는 아내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의 아우구스테 빅토리아와 부부관계가 좋았고 슬하에 6남 1녀를 낳는 아들부자의 끝판왕으로 [[호엔촐레른 가문]]은 현재에도 빌헬름 2세의 직계 후손으로 내려져오고 있다. * 사적으로야 술, 약, 여자에 절어 엉망진창이었지만 실제로는 원체 똑똑해서 5살엔 놀랍도록 성적이 좋아 할머니 조피가 자랑하기도 했다. 실제 군인도 아니고 [[똥별]]이면서 굳이 전장에 쫓아다니며 폐만 끼치고 거하게 깨지던 아버지와 달리 군인 활동보다는 공부 쪽이 적성에 잘 맞고 무지막지한 교육으로 단련되어 제국의 실정도 잘 꿰뚫고 있었지만, 이 때문에 황제는 아들을 경계하고 대학도 못 가게 난리치고 방탕하게 살도록 고의로 방치해 점차 육체적, 정신적으로 다 드러나게 [[와르르맨션]] 급의 폐인이 된 것이라고. 가정에서도 아버지와 불화, 어머니의 부재와 아내까지 루돌프의 정신을 심하게 갉아먹어서 극한의 스트레스를 받았다. 실제로 죽기 전 지인들의 기록이며 초상화 등은 보정을 해도 있는대로 맛이 간 상태를 드러낼 정도니, 이쯤이면 애비가 아니라 웬수라고 봐야할 정도. 공부를 잘 하고도 가고 싶었던 대학도 못 간 루돌프와 정반대로, 의외로 프란츠 요제프 못지 않은 상꼰대 이미지인 프로이센의 빌헬름 1세 부부는 아들 프리드리히를 대학에 처넣다시피 하여(...) 억지로 갔지만 그냥저냥한 성적으로 졸업이라도 시켰다. 루돌프는 이 때 자유주의 학풍에 물든 [[프리드리히 3세(독일 제국)|프리드리히 3세]]와 친했는데 프리드리히가 일찍 가고 꼴도 보기 싫은 빌헬름이 즉위하면서 엄청 좌절하고 더 약물, 주색에 빠졌다고 한다. * 출중한 인물임에도 공부도 못 하게 하고 정치에 끼워주지도 않는 스트레스와 보수적인 궁정에 반항하듯 자주 궁을 탈출해 자유주의자와 개혁파들과 어울렸다. 궁정에서야 밉상으로 찍혔지만 루돌프는 빈의 서민 술집 등에 종종 출몰해 술꾼들하고도 소탈하게 놀아 평민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약쟁이에 눈 돌아가게 문란한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음에도 그들과 직접 어울리면서 하층민들의 희망없는 생활을 보며 그 처우나 제국 체제 개선 등을 주장하고 사치스런 귀족들과 싸우던[* 실제로도 루돌프는 1880년대에 태동한 [[https://en.wikipedia.org/wiki/Trialism_in_Austria-Hungary|오스트리아-헝가리-크로아티아 제국]] 개편안을 지지한 인물 중 한 명이었다.] 루돌프의 비극에 신민들은 진심으로 슬퍼했고, 그 반동으로 [[벨기에의 스테파니|스테파니]]는 안 그래도 인기 없는데 남편을 못 살게 굴며 바가지 긁는 악처로 욕 먹고 딸 [[엘리자베트 마리]]조차 아버지에게 동의하고 존경하면서 아버지를 이해 못하고 괴롭혔다고 스테파니를 원망했다. 아들이 망가지는 동안 신경도 안 쓰던 [[엘리자베트 폰 비텔스바흐|엘리자베트 황후]]는 이 일로 완전히 비정한 엄마로 찍히고 여생을 진짜 정신병자라고 의심 받을만큼 우울에 빠져 지냈다. 그러고는 며느리 스테파니를 면전에서 욕하고 "쟤가 어떤 여자인 줄 알면 루돌프가 왜 그렇게 타락했는지 제국의 누구든 이해할 거다. 저런 게 황태자비라니 국민들한테 수치스러워 얼굴을 못 들겠다!" 같은 폭언도 했지만 [[지랄하고 자빠졌네|세간의 반응]]은 싸늘 그 자체라 [[너나 잘하세요|셀프빅엿]]만 먹었다. 정작 제일 큰 책임자인 [[프란츠 요제프 1세]]가 욕을 안 먹은 이유는 딱히 잘 한 게 없어도 아들이 죽고 장례식 기간에도 집무실에 박혀 사는 모습을 보일 정도로 성실함 하나만 끝내줬기 때문(...) 사실 황후나 다른 황족들이 하도 의무나 체면을 팽개치고 나도는 사람이 많다보니, 잘하든 못하든 상대적으로 궁에 틀어박혀 일하는 황제가 더 돋보일 수밖에 없긴 했다. 황제는 아들의 죽음을 진심으로 슬퍼했지만 가족과 친구들에게 일일이 유서를 보낸 루돌프는 황제만 없는 사람처럼 유서도 안 남겨서 자신이 먹은 빅엿을 아버지에게 그대로 돌려줬다. * [[케냐]]에 있는 호수인 [[투르카나호]]는 1975년 이전에는 그의 이름을 딴 루돌프호로 알려졌었다. [[분류:오스트리아의 황태자]][[분류:합스부르크로트링겐 가문]][[분류:1858년 출생]][[분류:1889년 사망]][[분류:오스트리아의 자살한 인물]][[분류:카푸친 교회 안장자]][[분류:가터 훈장]][[분류:즉위하지 못한 계승자]]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